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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현장 인력연구팀 미국•일본 병원 현장조사 보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법 만들기

유지현 (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

 

 

20110601.jpg 지난 2월 저를 포함한 보건의료노조 현장 인력연구팀 6명은 미국과 일본의 병원현장을 방문해 현장 간호사와 병원의 인력현황, 교대제 노동조건을 조사하고 돌아왔습니다. 이에 앞서 저는 2010년 2월 8박 9일의 일정으로 미조직 조직화 사례를 조사하기 위해 CNA를 방문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조사에서는 좀 더 자세한 내용들을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관련한 내용들은 지난 5월 12일 제40회 국제간호사의 날 기념으로 국회에서 진행한 ‘한•미 병원현장과 간호사 업무, 노동조건 비교 국회토론회’에서 한 차례 발표한 바 있으며, 자료집으로도 제작됐습니다.

 

두 차례 방문에서는 여러 가지 소중한 경험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미국 캘리포니아 간호사 노조(CNA)가 지난한 노력을 기울여 만든 캘리포니아 간호사 인력법(The ratios)에 대한 실질적인 조사를 할 수 있었고 한국에도 꼭 도입해야 한다는 영감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점입니다.

 

이 법의 핵심은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위해서는 더 많은 간호인력이 필수적이다”라는 정신이고 간호사와 환자의 비율을 법으로 정해 위반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 법에 따르면 병동을 기준으로 간호사 1명은 5명의 환자만 간호해야 하고, 중환자실이나 신생아실은 2명의 환자만 돌보도록 되어 있습니다. 18명 이상의 환자를 담당하거나 심지어 30명 이상의 환자를 돌보느라 밥 먹을 시간,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 우리나라 간호사들의 처지에서는 상상할 수 도 없는 꿈같은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법을 만들기 위해서 CNA는 1995년 대의원대회에서 우리 자신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 환자를 지키자는 목표를 세우고 장기 실천 계획을 세웁니다. 공청회, 항의, 집회, 언론과 입법부를 향한 14,000여 통의 탄원서를 보냈으며, 이 법안의 개선을 저지하려는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지사에 대항해 오랜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그 결과 1998년 CNA가 후원한 입법안이 최초로 승인됐으며, 2001년 Ratios 법안이 통과되고 2004년에 비로소 급성기 병상에서 처음으로 비율제가 정식으로 시행됐습니다.

 

2008년 인력법은 더 개선됐고 이제는 캘리포니아 주 뿐만 아니라 미국의 전역에 걸쳐 26개 주로 이 법안을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법이 얼마나 현장 간호사들의 지지를 받았는지는 조합원의 규모가 3배로 확대되었다는 것, 캘리포니아에서 1999년 이후 등록 간호사 수가 40% 증가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성빈센트 병원에서 일하는 한인 간호사와 면담을 진행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녀는 경기도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3년 반 동안 일한 경험이 있고 호주를 거쳐 미국의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30명 정도의 환자를 담당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미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정도라고 잘라 말합니다. 동부의 한 병원은 환자 당 간호사 비율이 1:8~9 정도라서 파업을 준비중이라고 합니다.

 

주사 바늘에 의한 자상도 있을 수 없고 노동안전을 위해 취업 후 맨 처음 환자 체위변경을 위해 기구를 이용하는 리프트팀 안전부터 배운다고 합니다. 한국에서처럼 신입 간호사들에 대해 소위 ‘태운다’, ‘뺑뺑이 돌린다‘는 행위는 ‘학대’로 취급받으며, 그 즉시 소송을 할 거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다만, 한국의 3교대 근무제와는 다르게 12시간 2교대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었는데, 한국에 비해 업무 강도가 훨씬 덜하기 때문에 12시간 근무를 하더라도 할 만하고 밤근무 중에는 1시간의 수면을 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휴식시간 30분과 식사시간 1시간도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릴리프 간호사가 대신해 환자를 돌보기 때문에 비율법이 무너지지 않고 지켜집니다.
 
그날 그녀는 12시간 근무 중 8시간을 환자와 수다를 떨면서 보냈다고 합니다. 환자에 대해서 다 알아야 정서적 간호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환자와 이야기를 하면서 투석을 거부하는 환자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켰고 우울해하는 할머니 환자를 기분 좋게 만드는데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문직 간호사로서 일에 대한 참된 보람을 찾으려고 노조와 함께 인력법 투쟁을 정말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덧붙여 미국 병원비가 어느 정도 비싼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는데 앰블런스 한번 움직이면 최소 100만원, 제왕절개 수술 1천만원, 심장 수술은 1억원 정도가 든다고 합니다. 병원비가 없어서 2~3일 응급치료만 하고 퇴원하거나 10년에 걸쳐 치료비를 분활 상환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임기 마치면 민간의료보험회사의 부사장으로 갈 정도로 그 만큼 영향력이 막강한 점도 의료보험 제도 개혁을 어렵게 하는 점이라고 설명합니다.
 
UCLA에서 근무하는 또 다른 한인 간호사는 인력법을 철저하게 준수하고 중증도가 높은 대학병원이기 때문에 오히려 법에서 명시한 기준보다 더 많은 간호사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경우 간호사가 의사보다 환자에 대한 정보 파악이 더 빠르고 앞선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만큼 간호사를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고 합니다.

 

더불어 한국병원 이야기를 듣다보면 한국에서 일하지 않는 것이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며 간호사 스스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의사들은 미국의 대학병원에 연수를 많이 오는데 왜 간호사들은 오지 않느냐며 좋은 경험을 배울 수 있도록 교환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인력법안을 그대로 한국에 들여오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병원 전체 직원을 포괄하고 있는 우리 노조로서는 간호사 이외의 전 직종들에 대한 적정한 기준을 함께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20%가 넘고 있는 간호사 이직률, 17만명에 이르는 유휴간호사가 있음에도 중소병원은 간호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간병인을 따로 구해야 하는 환자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또한 가장 절실한 우리가 먼저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병원인력이 늘어날수록 환자사랑도 커집니다’라는 슬로건으로 ‘러브플러스 캠페인’을 진행하며 인력충원을 전략 과제로 삼고 있는 보건의료노조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법’을 만들려고 합니다. 환자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법, ‘병원 인력법’을 만드는 길에 함께 하지 않으시겠습니까?